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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실험 레포트를 쓰다가 집중력의 한계를 느끼고 일곱시 가까이 되어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오전 10시 30분까지 레포트를 제출해야 했는데 일어나 보니 10시 55분. 실험 파트너가 레포트를 다 썼다고 보여주겠다고 해서 빌리고는 내가 대신 제출해 주기로 했기 때문에,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었다. 씻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헤치며 실험실 앞에 있는 레포트수령상자에 가보니 이미 비워져 있었다. 잠시간 당황하다가 일단 실험실 안으로 들어가 봤다. 실험실 안에서 레포트를 체크하고 있다면 늦게라도 내 볼 생각이었다. 실험실에는 내 실험을 담당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대신 다른 두 명이 있었는데, 대학원생으로 보이는 한 명은 실험실 한 구석의 캐비넷으로 둘러싸여 조그만 방처럼 된 곳에서 염산 냄새를 풍기는 기계(전자과 실험실에 왜 이런 냄새가 풍길까)를 다루느라 내가 들어가도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고, 실험복을 입고 있는 교원 한 명은 실험실 다른 쪽 구석과 연결된 교원대기실 안에서 컴퓨터를 하느라 내가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난 자유롭게 실험실 안을 둘러볼 수 있었다. 실험실 한 쪽 구석의 테이블에 눈에 익은 분홍색 표지의 서류 더미들이 보였는데, 아무래도 수령 상자에서 방금 꺼내진 듯한 레포트 뭉치들었다. 표지를 보니 같은 실험을 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이름이 보였고, 레포트의 가장 위에는 수령 상자 열쇠가 얹어져 있었다. 살짝 열쇠 밑에 레포트를 끼워넣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11시 40분 가까이 되어 있었다. 오후 1시부터 레포트 검사 결과를 통보받는데 한 시간 정도는 쉴 여유가 있었다고 생각해서 스르륵 잠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이미 1시. 또 다시 정신없이 준비하여 학교로 갔다. 10분 정도 늦게 실험실로 들어갔다. 내 실험 파트너는 이미 검사를 끝내고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고, 1시 30분부터 레포트 검사를 시작하는 친구가 미리 와서는 책상에 엎어져서 졸고 있었고, TA (한국에서는 조교라고 하는 것 같다)가 옆 책상에 앉아 있었다가, 내가 들어가자 친구들이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는, 방금 들어온 녀석이 레포트 검사할 녀석이구나 하고는 나를 불러서 레포트가 통과되지 못한 이유들을 설명해줬다. 제출시간을 20분도 더 넘긴 상태에서 일어나서는, 책상에 어지럽혀져 있던 레포트들을 추려서 헐레벌떡 학교로 가서 제출한 것이고, 그나마도 그래프는 세 장을 더 그려야 하고 한 장은 미완성이며, 고찰부분은 쓰지도 않았기 때문에 통과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껏 써 놓은 몇 장마저 집에 놓고 온 건 참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게 했다. 원래 두 번의 재제출 기회가 주어지고 한 번에 통과하지 못한다고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매우 심각한 상황이며 순탄한 학교 생활이 흔들릴 정도의 일은 아니었지만, 보통 이 재제출이란 열심히 썼다고 생각하고 내고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지적받고 그에 따라 보완해서 다시 검사를 받으라고 있는 프로세스라서, 아예 미완성 레포트를 제출하는 것이 좋을 리 없다. 뭐 그리 하여 나머지 다 써서 다음주 이시간까지 가져오세요 라는 식으로 검사는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공학부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고는 다시 집에 돌아갔다. 5교시, 즉 오후 4시 15분부터 5시 45분까지 수업이 있었고, 그래서 원래는 레포트 검사를 끝내고 도서관 같은 데서 적당히 자다 갈 생각이었는데, 정말이지 편한 잠자리가 간절했기 때문에 집에 돌아왔는데, 두 시간 정도는 마음놓고 푹 잘 수 있겠지 생각하며 잤다. 가위에 눌렸다... 꿈 속에서, 내가 지금 자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다리가 움직이지는 않고 있지만 잠에서 깨면 된다는 것까지 의식하고 있었고, 하지만 피곤해서 그냥 무시하고 자려다가 갑자기 조금 무서워져서 깼다. 팔과 다리는 저려 있었고, 이불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시계를 보니 4시 10분. 또다시 헐레벌떡 학교로 갔고, 다행히 이번엔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내일 오후에 제출할 작은 과제 하나가 남긴 했지만, 일단 한 숨 돌리게 되었고, 집에 돌아와서는 이번이야말로 진짜 편하게 잠을 잘 생각으로 누웠다. 악몽을 꿨다.... 꿈 속에서 나는 두 개의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일하는 프로그래머였다. 전철을 타고 어디를 가려는데, 옛날에 지은 지방의 JR역들이 흔히 그렇듯, 그냥 평지에 좌악 깔린 철로에, 플랫폼으로 가려면 육교를 건너는 그런 역이었다. 육교의 계단 부분이 끝나고 건너는 부분으로 넘어가려는 곳에 어떤 할머니가 쓰러져 있었고, 부축하는 사이에 어느새 주위를 돌아보니 육교의 반대편에서 많은 사람들이 걸어 나오고 있었고, 이쪽에서도 사람이 그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육교의 반대편으로 걸어가려고 했지만, 그것은 길을 건너기 위한 육교가 아닌, 단지 땅 위에 건설된, 어느 장소로 통하는 다리였다. 다리의 끝에서 들어간 건물은 작은 숙소.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지만, 예전부터 있던 집을 개조했는지 구식 욕탕과 현대식 욕탕이 둘 다 있었다. 사람이 많은 곳은 무슨 찜질방의 홀 같은 곳이었는데, 사람들은 가벼운 복장으로 여기저기서 책을 읽거나 잡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움직이고 있는 사람도 많은 곳이었다. 이 곳에서 이야기를 들으니, 이 곳은 산 사람들이 있는 곳이 아니었다. 나는 그 다리를 건너는 순간에 이미 삶과 죽음이 모호한 곳으로 간 것이었고, (아마 N의 등대를 본 탓에 이런 꿈이 나온 것 같다) 사람들이 가는 곳은 사람들을 처리하기 위한 찜통이었다. 이물질이 들어가면 재가 남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는 사람들은 공항 검색대처럼 소지품 검사를 받는다. (노트북이나 과자 같은건 걸리는데, 입고 있는 옷은 멀쩡히 통과하더라) 소지품 검사 뒤에는 찜통으로 들어가는 티켓을 산다. 사람들이 여러 줄로 서 있는 곳에서, 난 빨리 어딘가 줄에 서지 않으면 큰 일을 당할 것 같은, 하지만 그렇다고 찜통으로 들어가기는 싫은 상태에서 우물쭈물하다가, 티켓을 산 사람들이 찜통으로 간 뒤 매표소엔 나 하나 남아있었고, 이번 찜통은 매진이라며 다시 찜질방의 홀로 돌아갔다. 꿈을 다 보고 난 뒤니까 지금은 찜통이라고 하고있지만, 이 때만 해도 난 찜통이 아닌, 불로 태우는 곳인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곳에서 사람들이 모두 죽는 것은 아니었다. 백 명 정도는 들어갈 것 같은 커다란 엘리베이터에 사람들이 들어가고, 뜨거운 온풍 처리를 거친 뒤 나오는데, 혼자서는 거동도 하지 못하고 전동의자에 앉아서 생활하는 노인도 힘들어는 보이지만 살아서 나오고 있었다. 그러다 저 구석에서 울리는 핸드폰의 진동이 나를 깨웠다. 친구한테 온 연속 다섯 번째의 부재중 전화였는데, 레포트를 써야 하는데 컴퓨터가 켜지지 않는다는 전화였다. 금요일 밤 11시쯤에 가서 해 주겠다고 했다. 당장 나도 시험기간이라 바쁘지만 그래도 베프의 생일날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다. 핸드폰은 내게 이미 날짜는 금요일이 되었고, 자정에서 30분 정도 지났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열한시 반 정도에 알바가 끝난 여자친구한테 문자가 와 있었고, 난 악몽을 꿨다고 답장을 보냈다. 한시간 뒤의 답장이지만, 여자친구는 보통 알바 끝나고 걸어서 집에 오기 때문에 그것보다 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알고보니 버스 타고 일찍 집에 왔다더라. 어느 정도 현실감각을 되찾고 나자, 난 내가 그런 찜질방 고문 같은 꿈을 꾼 이유가 안그래도 비가 내려서 우울한 날씨에 레포트와 기타 등등으로 받은 스트레스, 그리고 최대 출력으로 틀어논 전기장판에 있지 않을까 의심했고, 주황색 취침등과 혼자 있다는 것에 공포를 느꼈으며, 걸어서 3분 거리인 여자친구의 집으로 갈까 생각도 했지만 그냥 혼자 이 공포를 이겨내기로 했다. 하아... 정말 사는게 사는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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